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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량하이커를 위한 이벤트인 오티티(On the Trail)를 주최하는 베러위켄드가 OTT Original, OTT FIND에 이어서 이번에는 'OTT Liter' 로 찾아왔다. 울트라 라이트 하이커들을 위한 이벤트다. 가평 대성리역에서 출발해서 운두산-오독산-축령산-서리산-주금산을 넘는, 1박2일 35km를 걷는 코스다. 

하루 일찍 출발해야하는 나는 배낭꾸리는 걸 조금 서둘렀다. 어제 퇴근하고 싸놓았던 배낭을 한참 서서 바라보다가 다시 풀어 헤쳤다. 이미 다 싸놓은 배낭을 다시 풀어헤치고 고민하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했다. 관건은 행동식이었는데 너무 양을 줄이면 불안하고 너무 푸짐하게 가져가자니 무게가 몹시도 신경쓰인다. 

 

1일차. 대성리역으로 하이커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다. 인스타그램으로 이미 익숙해진 얼굴들도 더러 보인다. 장거리 산행을 앞두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묘한 긴장감이 맴돈다.

 

조금 불안하지만 기분 좋은 긴장감

 

얼마 전 영남알프스 태극종주 도전에서 처참히 중탈하고야 말았던 쓰린 기억이 있다. 그래서 이번 1박2일 35km는 꽤 걱정이 된다. 좀 일찍 찾아온 더위도 걱정거리. 다행히 약간 흐린 날씨가 산 타기엔 딱 좋다. 시나브로 살랑살랑 부는 바람 덕에  산행은 생각보다 수월하다. 이번엔 중탈하지 않을 것 같은 좋은 예감! 

 

CP까지 가서 점심식사를 할까 했지만 다들 허기져서 아무 길에나 앉아 식사를 하기로 했다. 음식을 준비하는 스타일도 제각각이다. 다들 김밥이나 샌드위치 따위로 간소하게 준비한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메뉴가 있다. 매번 색다른 하이킹 푸드로 주목받는 신지선 님의 샐러드와 요거트를 곁들인 또르띠아.

 

운두산과 오독산을 지나 수래넘어 고개 즈음, 걸음을 시작한지 거의 다섯시간만에  CP에 도착했다. 어제 얼려온 얼음물이 동나려던 참이었는데 시원한 얼음물이 반겨준다. 나중에 알고보니 차가 들어가지 못해 스텝 여러분이 직접 운반하였다고 한다.  오늘만도 이미 꽤 많은 걸음을 걸었다고 생각했지만 하이라이트는 축령산까지 오르는 길이다. 포도당 캔디 하나 까서 입에 넣고 다시 가볼까!

 

Cayl Mari Betterweekend ver. & Hoka one one Arkali

배낭은 하이커의 개성을 가장 잘 나타낸다. 배낭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패킹법을 구경하는 것은 재미이기도 하고 종종 참고가 되기도 한다. 기존 오티티와는 다르게, 라이터이니 만큼 참가자들의 배낭은 3~40리터 배낭이 대다수다.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케일(CAYL)과 마운틴로버(Mountain Rover). 유명한 외국 브랜드보다 오히려 국내 로컬 브랜드의 배낭을 쉽게 볼 수 있다. 반갑기도 하고 괜히 뿌듯하다.  

 

​배낭과 더불어서 하이킹 슈즈도 각양각색이다. 등산화는 거의 보지 못했고 역시 트레일화 위주다. 가장 많이보이는 것은 역시 알트라와 호카오네오네인데, 아디다스, 뉴발란스, 아식스, 몬트레일 처럼 덜 보편적인 제품도 종종 보인다. 등산화가 꼭  불리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요즘 계절의 장거리 하이킹에서는 상대적으로 가볍고, 통기성과 쿠셔닝이 좋은 트레일러닝화가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들이 보편화 된 것 같다.  

 

LMHC 멤버들과 

 

급경사와 거치른 로프구간을 통과해서 축령산에 겨우 오르자 다들 짐을 벗어던지고 허겁지겁 행동식을 꺼내 먹느라 여념이 없다.  날씨가 살짝 흐렸기에 망정이지 땡볕이었다면 분명 얄짤없었을 구간이었다. 정신 못차리고 있는 와중에 축령산 정상에서 단체사진을 찍자고 제안했다. 왠지 지금 찍어둬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서리산을 지나 저녁 7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 무사히 1일차 20km 코스를 마쳤다. 11시간 가량 걸은 셈이다.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다행히 야등은 면했다. 나름 신속한 발놀림으로 거침없이 산을 누볐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들어온 순서는 뒤에서 꼽을 정도다. 영남알프스 때 단 한번의 중탈로 인해서 '리동=중탈'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써서 억울했는데 이번에 모두의 기대와 바램을 뒤집었다. 나는 중탈하지 않았다.

 

용준형님은 평소 나와 비슷한 페이스로 함께 걸어서 였는지 알게모르게 서로 의지하는 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이 됬었다. 최근 결혼준비로 몇 달 쉬었던 탓에 이번 라이터가 걱정이 되었는지 에너지바를 10개 넘게 챙겨오신 용준형님.

 

"리동 때문에 완전 말려들었어~" 이번에 내게 꽤 배신감을 느끼신 모양이다. 컨디션이 괜찮아서 사실 조금 욕심내서 평소보다 빨리 걷긴 했는데... 죄송해요 형님!

 

2일차. 송영훈 커피타임은 이제 빠질 수 없는 전통이 됐다. 캠핑용 스토브와 포트로 수십명이 먹을 커피를 내리는 모습이 이채롭다. 피곤한 몸이지만 상쾌한 새벽 숲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커피한잔으로 피로를 씻어낸다. 일정 중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숲 한켠에는 어제 출발 전에 찍은 사진으로 작은 사진전시회가 열렸다.  오티티의 아침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즐거움들이 가득하다. 

 

"계곡을 끼고 걷는 힐링코스 입니다. 어제보단 훨씬 쉬울거예요" 오늘은 힐링인가? 어제는 정말 힘들었지만 오늘은 계곡에서 시원하게 멱도 감고 쉬엄쉬엄 걸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분노와 증오의 하이킹

주최측의 농간이 틀림없다. 아니면 힐링의 뜻을 잘 못 알고있는건가? 둘째 날 15km나 걷는 일정이 힐링일리가! 계곡은 초반 잠시였을 뿐, 주금산까지 오르는 길은 전혀 녹록치 않다. 설상가상으로 이른 오전부터 볕이 꽤 따갑다. 힐링은 무슨..알고도 또 속았다. 생각해보니 차라리 힐링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속은 편하다. 첫째 날 고되게 걸었는데 둘째 날까지 힘들다고 하면 무슨 의욕이 생기겠는가..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자..

 

이번 라이터에도 GPS 인증 시스템이 사용됐다. 자칫 단조로울 수도 있는 하이킹 행사지만 인증 시스템으로 하이킹의 즐거움을 더했다. 코스를 통과하면서 각 인증 포인트마다 휴대폰으로 통과 인증을 해야하고, 도착지점에서 인증이 확인된 경우만 기념품을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인증을 할 때 마다 고전게임에서 들었을 법한 경쾌한 팡파르가 울려퍼진다. 아기자기한 재미를 주는 요소다.

 

Photo Kangsai

 

찍은 사진이 몇 장 없다는 건 힘들었다는 증거다. 주금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미끄럽기로 악명높은 길이라 애를 먹긴 했지만 다행히 2일차까지 무사히 완주했다. 아쉽게도 도착지점은 버스가 자주 오지 않는 곳이라 여유부릴 새도 없이 마을버스를 타고 부랴부랴 떠나야만 했다. 

 

LMHC 멤버들과 감자탕집에서 모여 뒷풀이를 했다. 산에서는 다들 지쳐서 말수가 급격히 줄어들기 마련인데 내려와서는 웃으면서 힘들었던 지난 시간들을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으니 즐거웠다.  '지나고 나니 힐링이네' 라면서.

 

​언제 끝날지 몰라 부산으로 돌아가는 차편을 예약해 두지 않았는데 기차표가 죄다 매진이라 표를 구하는데 적잖이 애를 먹었다. 겨우 표를 구해서 허둥지둥 기차에 올라타 한숨 돌리고 나니 창밖으로 지나가는 바깥 풍경처럼 지나간 1박2일이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어라, 진짜 힐링이잖아..?

 

Photo @son_captain

Author

이동현
  • Editor
  • Filmer
Photo Lee dong, Son captain, Kangs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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