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나는 계획적인 삶을 사는데 익숙하지 않다. 많은 일들을 그때그때 부딪히면서 시행 차고를 겪는 게 편하고 효율적이었던 경험을 20대 초반에 많이 했고 그것이 습관이 됐다. 그래서 여행을 가더라도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것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곤 했다. (여행 중 어쩌다 발견한 음식점에서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그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원인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하는 데 있었다. 볼더링 여행 특성상 볼더링패드 라는 장비가 있어야 등반이 가능하기 때문에 독단적으로 행동하고 즉흥적으로 행동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이 하는 멤버들의 의견 공유 및 조율이 필요했다. 한 명씩 돌아가며 가고 싶은 섹터와 하고 싶은 루트를 정하여 다른 멤버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런 시스템은 서로에 대한 배려가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한 사람씩 섹터와 루트를 정하기 시작했고 곧 나의 차례가 왔다.

 

나는 카르마(V12)라는 루트를 선택했다. 카르마는 글로벌하게 유명한 루트였고 나에게 있어 아직 완등해 보지 않은 최고 그레이드의 루트였기 때문에 선택했다. 나는 그 루트에 온전히 하루를 쏟게 된다. 그 루트는 안전상 4개의 패드가 필요했고 내가 안전하다고 상각하는 방식으로 패드를 설치했다.

 

카르마는 루트 길이가 짧다. 그만큼 그 짧은 루트에 높은 난이도가 함축되어 있어 한 동작 한 동작이 까다로웠다. 처음에는 스타트 동작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있었고 그렇게 집중력을 쏟아부었다. 점점 한 동작씩 몸에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멘틀링 전 동작인 크럭스 구간까지 가기 시작했다.

 

최고 난이도의 루트를 프로젝트로 시도할 때는 주변의 모든 흐름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서 통제해야 한다. 그날의 날씨, 주변의 소음, 몸 상태, 홀드의 상태 등등 내가 등반 외에 신경 쓰이지 않도록 주변을 통제해야 최고 난이도의 루트를 내 힘의 200%를 사용해서 도전할 마음이 생긴다. 본인의 프로젝트를 만나면 각성하는 시간이 오는데 그 시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배고픔도 잊은 채 미친 듯이 등반을 하고 보니 해가 저물고 있었고 그제야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 시점에서 무언가가 뇌리를 스친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머지 3명의 멤버들이 군말 없이 옆에서 서포트를 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꼈고 멤버들에게 미안함 과 고마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날은 내가 루트를 선택하는 날이었지만 즉흥적인 나의 선택과 욕심으로 인하여 다른 멤버가 느낄 피해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멤버들은 계속 괜찮다고 이야기해주었지만 미안한 생각이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다.

 

등반 여행을 갈 때는 같이 가는 사람들이 프로젝트 등반을 할 것인지, 여러 가지 루트를 최대한 많이 해 볼 것인지에 대한 의견 공유를 미리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등반을 하다 보면 프로젝트를 할 마음이 없다가도 루트를 보고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생길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진심으로 양해를 구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시간에 등반이 아닌 서포트를 해야 하는 동료들을 생각할 수는 있어야 진정한 팀이 아닐까? 그래서 프로젝트를 갖고 여행을 간다고 하면 미리 같이 가는 사람들에게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어떤 섹터에 가서 어떤 루트를 해보고 싶은지를 정하고 계획하는 일 이 중요해진다. 모두가 효율적인 등반을 하려면 말이다.

 

등반 여행은 팀플레이라고 생각한다. 싱글 피치 등반이나 멀티 피치 등반은 2명 이상의 팀워크가 필요하고 볼더링은 스팟을 봐 줄 팀원이 필요함을 이번 여행에서 강력하게 느꼈다. 등반 중 내 발밑에 믿음직한 사람이 나의 안전에 신경을 써주고 있다는 안정감이 클수록 더 좋은 퍼포먼스가 발휘된다.

 

등반이 끝나고의 팀플레이도 무시할 수 없다. 일단 등반이 끝나면 모두들 피곤하고 정신없는 상태인데 그때부터는 생활적인 부분에 신경을 쓰는 게 쉽지 않다. 밥은 어떤 것을 먹을 것인지, 청소나 빨래는 어떻게 할 것인지, 잠은 어떻게 잘 것인지 이 모든 것들이 등반이 끝나고 해야 되는 부가적인 일에 해당된다.

 

우리는 일에 대한 분배를 하기 시작했고, 서로에 대한 서포트가 잘 이루어졌다. 팀워크가 잘 맞았던 것이다. 다들 어느 시점에 어떤 일을 해야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지 알고 있었고 그것은 나이를 불문하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졌다.

 

퐁텐블로의 광범위 한 섹터들의 정 중앙에 있는 숙소는 웬만한 섹터는 차로 15분 거리에 있었기에 부담 없이 등반을 즐겼다. 숙소 앞에는 테라스 겸 주차장이 있었고 숙소 주변에는 말들이 뛰어놀 수 있는 넓은 들판이 있었다. 내부는 복층 구조였으며 모든 것이 신식이었다. 다만 에어컨이 없었는데 더운 시기에 등반 여행을 오는 사람이면 이런 곳은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는 마트에서 2만 원짜리 선풍기를 샀다. 숙소는 퀄리티에 비해 저렴했다. 1박에 11만 원 정도 했고 넷이서 나누면 괜찮은 금액이었다 주용 군의 말로는 산악부 스타일 이면 40명도 잘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을 정도로 쾌적한 생활을 하였다.

 

나는 한곳에 깊게 집중하는 것보다 여러 가지를 다양하게 해보고 그 사이의 연관성을 찾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해외에 나가면 등반 이외에 여러 가지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다. 숙소 근처에 있은 음식점이나 카페, 술집, 그리고 장비점이나 마트, 철물점 같은 다양한 공간에서 그 안에 어떤 특징들이 있는지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는지 매장에서 어떤 노래가 나오는지, 어떤 생활패턴을 가지고 있는지 등등 관찰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등반 이외에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많다. 그중 우리가 다 같이 즐기고 관찰할 수 있던 것은 바로 술이었다. 오늘은 어떤 곳을 등반을 할지? 에서 오늘은 어떤 술을 마셔볼까?를 고민하고, 새로운 브랜드의 맥주나 와인 그리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치즈나 말린 고기, 과일, 스낵 등과 매치시켜서 먹어보는 것이 너무 재밌었다.

 

한 번은 정엽 형님을 따라 맥주 양조장에 간 적이 있는데 그곳은 등반 그레이드를 가지고 맥주의 도 수를 정한 곳이었다. (6B는 6도 이런 형태) 이 전에 스페인에 이민영 선수의 Last Ray를 촬영하러 갔을 때도 클라이밍 관련 맥주들이 있었다. 클라이밍과 맥주는 때 놓을 수 없는 관계인가 보다. 하지만 등반 여행이 알코올 여행이 되지 않게 항상 조심해야 한다. 알코올은 등반을 하는 데 있어 염증을 유발하고 판단력 저하를 일으키는 주범이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휴식일 전날에 마시는 것이 좋다. (그게 쉽지는 않지만)

퐁텐블로의 볼더링 섹터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피크닉부터 시작해서 요가, 볼더링, 트레일 러닝, 백패킹, 등등 데일리 하게 자연 속 활동들을 즐기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부모님과 함께 온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볼더링을 하는 모습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행복한 표정으로 등반을 하며 완등을 하지 못해도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그렇게 어느새 많은 루트들을 경험했고 떠날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정말 미친 듯이 등반했지만 퐁텐블로에서의 3주라는 기간은 정말 짧았다. 적어도 6개월 정도는 그곳에 있어야 웬만한 루트들을 시도해 볼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쉬움이 남았지만 “다음에 와도 아직 즐길 수 있는 루트가 많잖아”라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공항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 시각

주용 군 과 나에게는 한편의 이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아프리카로 가는 항공편이 변경되었다는 항공사의 일방적인 통보였다.

3편에 계속_

Author

신동철
  • Editor
  • Lighten Climbing Director
Video LIGHTEN CLIMBING ™

'ROCK TRIP 2022 기록지' 시리즈 보기

  • 1. ROCK TRIP 2022 기록지 EP.03 락랜드 1편
  • 2. ROCK TRIP 2022 기록지 EP.02 퐁텐블로 2편
  • 3. ROCK TRIP 2022 기록지 EP.01 퐁텐블로 1편
서비스 선택
댓글
profile image

최신 기사

  • Story

    카자흐스탄으로 떠난 BD 백컨트리 스키 캠프 이야기

    BD 백컨트리 스키 캠프 이야기

  • Camping Tools

    Big Agens 2023 Stake Hammer/Hatchet

    빅 아그네스 스테이크 해머 / 손도끼 출시

  • Trail Running Shoes

    [Review] Hoka Tecton X Trail Running Shoe Review

    호카 텍토 X 트레일러닝화 리뷰

  • Backpacking packs

    CAYL Juheul Backpack First Look

    케일, 새로운 주흘 배낭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