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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턴 스테이츠 엔듀런스 런(Western States Endurance Run), 흔히 WSER로 불리는 이 대회는 100마일(약 161km, 누적 상승 고도 약 5,500m, 누적 하강 고도 약 7,000m) 트레일러닝의 상징 같은 레이스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올림픽 밸리(196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에서 출발해 캘리포니아주 어번(Auburn)까지 이어지는 이 길은, 원래 말이 달리던 코스에서 시작됐다. 말이 달리던 길을 사람이 달리기 시작했고, 그 이상한 상상이 지금은 전 세계 울트라러너들의 꿈이 됐다.

 

2026년, 이하늘은 그 길 위에 선다. 장거리 하이킹을 기반으로 PCT, 존뮤어트레일, 콜로라도트레일, 백두대간 FKT 프로젝트를 이어온 그는 스스로를 여전히 “쓰루하이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제 그는 100마일 레이스의 출발선 앞에 있다. 그리고 그 곁에는 남편이자 파트너, 서포터이자 기록자인 양희종이 있다. 두 사람은 거대한 팀을 꾸리는 대신 “원래 하던 대로” 해보기로 했다. 하늘은 달리고, 희종(양군)은 움직이고, 기록하고, 케어한다. 필요하다면 ‘양군 1’과 ‘양군 2’로 나뉘어서라도.

 

이번 인터뷰는 WSER라는 대회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두두부부가 자연을 탐험하고 기록하고 서로를 지지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wser.org

WSER라는 꿈의 대회

양광조

먼저 WSER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볼게요. 사실 이 대회를 잘 모르는 분들도 꽤 있을 것 같아요. 하늘님에게 이 대회는 어떤 의미였고, 어떻게 참가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이하늘

저는 사실 트레일러닝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는 시점이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은 “이 대회가 내 시작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고요. 저도 2018년, 2020년쯤부터 트레일러닝을 조금씩 접하긴 했는데, 그전까지는 달리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다른 운동은 좋아했지만 달리기는 별로였고, 산에서 하이킹하는 건 좋아했지만 “저걸 왜 굳이 달리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트레일러닝을 하지 않을 때도 WSER라는 대회는 알고 있었어요. 언젠가는 저 대회는 꼭 가보고 싶다, 그런 마음이 있었어요.

 

저희가 미국에서 장거리 하이킹을 먼저 시작했잖아요. 쓰루하이커로서의 시작이 미국 베이스이다 보니 이 대회를 자연스럽게 먼저 접할 수 있었어요. 그때는 PCT를 걸으며 2,600마일, 2,500마일을 갔지만, 사람이 100마일을 30시간 안쪽으로 간다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싶었죠.

 

그런데 동시에 너무 해보고 싶은 대회였어요. 꿈처럼 갖고 있던 대회였는데, 올해 당첨이 된 거예요. 이렇게 빨리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언젠가는 기회가 오겠지 싶었는데, 그게 올해가 된 거죠. 저한테는 정말 개인적으로 의미가 큰 대회예요.

 

 

양광조

이 대회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100마일 대회라고도 하잖아요.

 

이하늘

맞아요. 원래는 말이 달리는 대회였어요. 올림픽 밸리에서 어번까지 이어지는 길을 말이 달리던 대회였는데, 어떤 이유로 말이 달리지 못하게 된 상황이 있었대요. 그때 누군가가 “말이 못 달리면 사람이 한번 달려보지”라고 한 거죠. 그렇게 사람이 100마일을 시도했고, 그게 성공한 거예요.

 

지금처럼 빠른 기록은 아니었지만, 사람이 100마일을 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거잖아요. 그 이후로 트레일러닝에서 50km, 100km, 100마일 같은 단위가 상징적으로 자리 잡게 된 흐름에도 이 대회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요. 마일이라는 단위가 갑자기 생뚱맞게 튀어나온 게 아니라, 말이 달리던 대회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어진 거죠.

 

그래서 그런 역사적인 대회를 내가 뛸 수 있다니, 정말 역사적인 느낌이 있어요.

 

양광조

그럼 기존에 이 대회에 참가했던 한국인들은 많았나요?

 

이하늘

제가 인터넷으로도 찾아보고, 주변 커뮤니티에서도 여쭤봤는데 딱 정리된 데이터는 많지 않더라고요. 한국 분들 중 완주하신 분이 네 분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중 한국에 계신 분으로는 심재덕 선수님이 두 번 완주하셨고요. 나머지 분들은 한국계이지만 해외에 거주하시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쩌다 보니 사람들이 “한국 여성 최초” 같은 식으로도 봐주시기는 하더라고요. 그 표현이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만큼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 대회이기도 한 것 같아요.

 

양광조

반응이 어마어마할 것 같은데요. 사람들이 가만 안 놔두겠어요.

 

wser.org

 

고도, 더위, 내리막을 준비하는 법

양광조

대회를 찾아보니까 고도도 고도인데, 시간에 따른 기온 변화가 엄청 크더라고요. 거의 영하권에서 40도에 가까운 환경까지 이야기되던데요. 이런 환경에 맞춰 특별히 준비하고 있는 전략이 있을까요?

 

이하늘

일단 전체 거리는 100마일, 약 160km예요. 특이한 점은 초반에 고도가 높은 구간을 지나고, 나중에는 밸리 쪽으로 내려가면서 굉장히 더워진다는 거예요. 새벽에 출발하기 때문에 초반에는 온도가 많이 떨어질 수 있고, 캘리포니아 시에라 구간과 가까운 곳이라 눈이 늦게까지 안 녹는 경우도 있어요. 실제로 최근 몇 년 대회에서도 눈 지대를 지나며 레이스를 이어간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런 초반 구간에서는 고산 적응이 필요하고, 후반으로 갈수록 나무가 거의 없고 땡볕을 그대로 받는 환경이 나와요. 그래서 더위도 큰 변수죠. 고도와 추위, 눈, 더위가 한 대회 안에 다 들어 있는 느낌이에요.

 

다행히 저는 몇 년 동안 매년 여름 미국에서 FKT 프로젝트를 해왔기 때문에, 일반적인 한국 분들에 비해서는 고도에 대한 적응이 어느 정도 되어 있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40도에 가까운 온도에서 달려본 적은 없어요. 다만 존뮤어트레일이나 그런 프로젝트를 할 때 엄청 더운 환경에서 고생한 적은 있어서, 간접적으로는 경험이 있죠.

 

최근에는 열 적응 훈련을 하고 있어요. 한국이 아직 본격적으로 덥지 않았을 때라 사우나처럼 할 수는 없었지만, 운동하고 나서 바로 반신욕을 한다든지, 일부러 옷을 조금 두껍게 입고 운동한다든지요. 원래는 새벽에 운동을 많이 하는 편인데, 열 적응 때문에 일부러 점심 이후 더운 시간대로 운동 시간을 바꾸기도 했어요.

 

양광조

일부러 더운 시간대에 나가는 거군요.

 

이하늘

네. 그리고 이 대회는 상승고도도 많지만, 저는 하강고도를 더 신경 쓰고 있어요. 상승고도가 5,000m 이상인데, 하강고도는 7,500m에서 8,000m 정도라고 해요. 전체적으로 그래프가 내리막 형태인 거죠.

 

제가 장거리 하이킹 출신이라 그런지 오르막에서는 크게 지치지 않는 편인데, 내리막은 좀 무서워하기도 해요. 계속 내리막을 달려 내려가면 다리에 오는 피로가 정말 다르거든요. 그래서 내리막에 중점을 두고 보강 운동도 하고, 관련 클래스도 듣고 있어요.

 

양광조

야간 구간도 있지요?

 

이하늘

네. 포레스트힐부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야간에 지나가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그 지점부터 페이서가 공식적으로 붙을 수 있기도 하고요. 저도 본격적으로 야간 훈련을 많이 한 건 아니지만, 장거리 레이스나 FKT 프로젝트를 하면서 밤에 혼자 움직이는 것에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있어요. 백두대간, 존뮤어트레일, 콜로라도트레일을 이어오면서 그런 경험이 쌓였죠.

 

양광조

이미 준비가 끝난 느낌인데요. 이제 열적응만 하시면 되겠네요. 결국 WSER행은 운명이었다는걸로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네요.

 

이하늘

5월부터는 더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힘들 때는 다음 CP까지만

양광조

장거리 하이킹도 그렇고, 최근에는 러닝도 계속하고 계시잖아요. 모든 구간이 신나고 즐거울 수는 없을 텐데요. 데드 포인트가 왔을 때 하늘님은 어떻게 극복하세요? 정신 승리라고 해야 할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있나요?

 

이하늘

저는 누가 시켜서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제가 정말 원하는 걸 스스로 판 벌려서 계획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힘들 때는 “이 판, 내가 벌였잖아. 네가 좋아서 시작한 거니까 지금 힘든 건 당연한 거고, 너는 지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많이 말해요.

 

힘든 순간이 없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그럴 때마다 “이 힘듦은 예상했던 거잖아. 네가 해보고 싶었던 걸 지금 하고 있는 거야. 그 기회가 주어진 거니까 조금만 더 하면 돼”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결국에는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생각을 많이 해요. 지금 내가 힘들어도 한 발이라도 더 내딛으면 끝에 조금 더 가까워져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양광조

강선희 편집장님이 하늘님의 말을 듣고 깨달음을 얻으셨나 봐요. 옆에서 계속 끄덕끄덕하시네요.

 

이하늘

처음 100마일 대회를 했던 게 장수트레일이었는데, 그때 염주호 선수님을 CP에서 만났어요. 이미 100km를 넘었을 때였나 그랬는데, 저한테 “힘들죠? 이제부터는 100마일 생각하지 말고 다음 CP까지만 생각하세요. 끝이 다음 CP까지인 걸로 생각하고 가면 돼요”라고 해주셨어요. 그게 정말 만고의 진리 같더라고요. 지금 힘들어도 한 발만 더 내딛자. 그렇게 하다 보면 그게 쌓이고, 다시 평온함을 찾기도 하고, 마음이 회복되기도 해요. 그러면 또 계속 길을 이어갈 수 있더라고요.

 

이건 장거리 하이킹을 하면서도 많이 생각했던 거예요. PCT 4,300km를 걸을 때도 “내가 언제 다 가지?”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하루하루 재미있게 걷다 보니 한 달 지나 300km, 400km가 되어 있었고, 그게 쌓이다 보니 멕시코에 있던 제가 캐나다 국경 쪽에 가 있었던 거죠.

제 삶을 바꾼 큰 포인트가 장거리 하이킹에서 배운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자”였어요. 그게 레이스에서도 적용되는구나 싶었죠.

 

양광조

이것도 이미 준비돼 있네요. 운명이라니까요.

 

장비의 기준은 ‘가장 편한 것’

양광조

베러위켄드에서 빠질 수 없는 질문이 장비잖아요. 이번 대회는 환경의 스펙트럼도 넓고, 타지에서 치르는 고된 대회이기도 한데요. 장비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이하늘

아직도 계속 고민 중이에요. 특히 신발은 여러 가지를 테스트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저한테 잘 맞고 편한 걸 찾으려고 해요.

 

누군가는 레이스니까 더 스피드 있는 신발, 통통 튀는 신발을 신는다고도 하는데, 이 대회는 내리막이 너무 많잖아요. 기존에 제가 트레일러닝이나 하이킹 FKT 프로젝트 때 신었던 방향성과는 다른 무언가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결론은 장시간 신고 있어도 편한 것. 가장 편안한 걸 중점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양광조

미국 대회는 필수 장비 규정도 조금 다르다고 들었어요.

 

이하늘

맞아요. 미국 대회는 한국이나 유럽 대회처럼 필수 장비 리스트가 엄격하지 않더라고요. 100마일 대회니까 베스트도 크고 짐도 많을 것 같지만, 실제로 선수들이 다니는 걸 보면 허리 벨트만 차고 다니는 경우도 많아요.

 

그럴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CP가 많기 때문인 것 같아요. 17개 정도 있다고 알고 있어요. 위험한 구간도 있고 사막 같은 환경도 있어서 CP가 많이 설치되어 있는 것 같고요. 그런 변수에 맞춰서 베스트나 장비를 보완하려고 해요.

 

더위가 큰 변수라 아이스 반다나도 적극적으로 사용해보려고 해요. 얼음을 넣고 목에 두를 수 있는 장비인데, 이번에 4월 대회부터 테스트해보려고 했어요. 날씨가 더워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죠.

 

양광조

베스트나 배낭은 어떤 쪽으로 생각하고 계세요?

 

이하늘

이번에는 벨트와 가벼운 베스트, 용량이 작은 쪽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양광조

특정 브랜드 언급도 가능한가요? (인터뷰에서 빠질 수도 있지만요.)

 

이하늘

일단 제가 코오롱스포츠 앰배서더이기도 해서, 요즘 트레일러닝 쪽으로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제품들을 실제로 보고 있어요. 고려 순위도 꽤 높고요. 그리고 저는 아디다스 테렉스 라인을 꾸준히 신어왔어요. 아그라빅도 높은 확률로 고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발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어요.

 

WSER은 제 인생에서 평생 한 번 도전할까 말까 한 꿈의 무대이다 보니, 장비 선택에 있어 더욱 신중해지는 것 같아요. 최상의 퍼포먼스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자리인 만큼, 저의 발에 가장 익숙하면서도 이미 WSER에서 증명된 아디다스 테렉스나 나이키 ACG와 같은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들도 테스트 해보고 있어요.

 

페이서 없이, 양군과 함께

양광조

포레스트힐부터는 페이서가 붙을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100마일은 혼자 가는 것처럼 보여도 주변의 도움과 서포트가 중요한 대회일 것 같아요. 이번에는 희종님을 포함해서 어떤 식으로 팀을 꾸리게 되나요?

 

이하늘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아직도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WSER는 페이서가 공식적으로 허용되는 대회이고, 미국에서는 그걸 굉장히 자랑스러운 트레일러닝 문화로 생각하더라고요.

 

그래서 페이서를 어떻게 할지 많이 고민했어요. 합을 맞춰보는 것도 어렵고, 부탁할 수 있는 사람들을 떠올려봤을 때 정서적인 유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제가 힘들 때 아무 걱정 없이 그냥 뛰게 해줄 수 있는 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비용적인 부분도 있고, 제가 무턱대고 “이거 해주세요”라고 부탁드리기가 죄송한 부분도 있었어요. 그래서 현재로서는 페이서 없이 운영할 생각이에요. 대신 서포터로 양군이 함께합니다. 양군 1, 양군 2 이렇게요.

 

양광조

분신처럼요?

 

이하늘

네. 저 못지않게 정말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아요. 가능하면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 한 명 정도 더 부탁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일단은 조촐하게 가보려고 해요.

 

양희종

서포터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당첨된 다음부터 “이 팀을 어떻게 꾸릴까”를 계속 생각했거든요. 외국 사례를 보니까 대부분 6~7명 정도 팀을 꾸리더라고요. 크루장이 있고, 운전만 하는 사람, 장비를 실어 나르는 사람, 페이서가 있고요.

 

그런데 그렇게 하기에는 저희에게 너무 규모가 컸어요. 비용도 그렇고, 숙소비나 식비도 그렇고요. 한국이었다면 친하니까 “밥 사줄게” 정도로 할 수도 있겠지만, 외국까지 갔을 때는 감당해야 할 비용이 너무 크잖아요.

 

또 하나는 유대감이었어요.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 건 정서적인 유대였어요. 페이서가 옆에 있을 때 하늘이가 편하게 갈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사람 때문에 신경을 쓰게 되면 오히려 힘들어질 수 있거든요.

 

양광조

정말 말 그대로 정서적인 유대감 없이, 오히려 이분을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 되면 더 힘들 수 있겠네요.

 

양희종

맞아요. 몇몇 분들이 떠오르긴 했지만 상황이 안 되기도 했고, 브랜드 문제나 여러 가지가 어긋나는 부분도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원래 우리 하던 대로 우리 둘이 해보자고 했어요.

 

우리가 엄청난 퍼포먼스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 완주하러 가는 거고, 지금까지 한 것처럼 재미있게 해보자는 거죠. 그래도 저희가 해외 대회도 많이 나가봤고, 예전 FKT 때도 제가 혼자 서포트했으니까 한번 해보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두렵긴 해요. 현장에 가면 제가 운전도 해야 하고, 하늘이도 케어해야 하고, 서포트도 해야 하고,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고, 행정적인 일도 해야 하거든요. 어렵긴 하지만 그냥 우리 둘이 원래 하던 걸 재미있게 해보자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양광조

그 해결 방법이 양군을 1, 2로 나누는 거라니, 되게 현명하신데요. 기러기처럼 좌뇌로 날고 우뇌는 쉬고 있다가.

 

양희종

그렇게 해보려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해요. 우리가 더 능력이 되거나, 제가 서포트 능력이 더 되면 팀을 꾸릴 수도 있을 텐데요. 누군가에게 같이 가자고 말하려면 제가 그 사람에게 정확히 뭘 줄 수 있는지도 생각해야 하잖아요.

 

저희는 개인적으로 열정 페이를 좋아하지 않아요. 도움을 받는 만큼 정확히 뭔가를 드리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 그런 부분이 불안하고 불편하기도 했어요.

 

 

라면 스프라는 소울푸드

양광조

CP 이야기가 나왔으니 식량 이야기도 해볼게요. 평소 레이스에서 좋았던 음식이나, 하늘님에게 신뢰감을 주는 음식이 있을까요? 저희는 소울푸드라고 질문지에 적었는데, 꼭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하늘

저는 장거리 하이킹을 베이스로 해서 그런지 에너지젤을 생각보다 많이 먹지는 않아요. 장기전에서는 에너지젤만 계속 먹으면 속이 미식거리고 위장 장애처럼 힘들어지는 분들이 많거든요. 저도 몇 번 그렇게 느껴서 자연식이나 일반 음식으로 많이 먹으려고 해요.

 

최근에는 대추야자나 말린 과일 같은 걸로 에너지를 섭취하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실제로 해보니까 꽤 괜찮더라고요. 이번에도 에너지젤만 먹기보다는 그런 것들을 섞어가며 먹을 예정이에요. 그리고 날씨마다 다르긴 하지만, 초콜릿 과자는 저한테 항상 최애예요. 다만 푹신푹신한 케이크류 말고, 바사삭거리는 것들이요. 빈츠나 팀탐 같은 식감이요.

 

평소에 먹는 것들은 떡처럼 푹신하거나 바로 삼킬 수 있는 제형이 많잖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바삭하게 씹히는 게 전혀 다른 만족감을 줘요. 감자칩도 의외로 좋았어요. 유럽이나 호주 대회 쪽에서 효과를 봤고요. 땅콩도 괜찮아요. 땅콩버터는 장거리 하이킹이나 FKT 때는 짜 먹기도 했는데, 트레일러닝 중에는 느글거릴 때가 있더라고요. 오히려 땅콩 원물을 씹으면서 달리면 식감 때문에 다른 만족감을 줘요.

 

양광조

공통점이 있네요. 바삭바삭한 제형.

 

이하늘

맞아요. 제형이 달라지는 게 저한테는 큰 반전 효과를 주는 것 같아요. 더운 날씨에는 사워 젤리도 입맛을 돌게 해서 도움이 되고요.

그리고 제 킥 아이템이자 소울푸드 같은 건 라면 스프예요.

 

양광조

라면 스프요? 요즘 스틱으로 나오는 그런 거요?

 

이하늘

네. 라면 스틱도 쓰고, 실제 라면 스프 한 포를 비상용으로 갖고 다니기도 해요. 모든 게 눌릴 때, 한국인이긴 한국인인가 봐요. 찬물에 타서 먹기도 하고, 그냥 입에 반 정도 털어 넣고 물로 헹궈내듯이 먹기도 해요. 항상 승률이 좋았어요.

존뮤어트레일 때도 정말 힘들게 푸시하면서 갔던 날이 있었는데, 그때 딱 한 포를 갖고 있었어요. “이제 정말 써야 한다” 싶어서 털어 넣고 마지막까지 갔죠. 걔는 항상 승률이 좋아요.

 

양광조

이걸 데드 포인트 질문에서 대답하셨어야 했는데요. 움직이게 하는 마법 같은 거잖아요.

 

이하늘

느낌을 바꿔주는 것 같아요. 그런 관점에서 양치나 가글도 도움이 많이 돼요. 장거리는 결국 먹은 만큼 가는데, 안 먹히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코트니 도월터 선수가 CP에서 양치를 한다는 걸 보고 저도 해봤는데, 입이 깨끗해지면 다음 음식을 다시 먹을 수 있더라고요.

 

서포터가 읽어야 하는 것

양광조

희종님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고 싶어요. 서포터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역할은 무엇인가요?

 

양희종

제가 여러 사례를 찾아보면, 결국 가장 큰 서포트는 연인이나 가족이 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아무리 팀을 꾸려도 그 옆에 있는 사람이 아버지거나, 남편이거나, 부인이거나, 아이들인 경우가 많아요.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극한으로 가면 사람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잖아요. 그 예민함을 컨트롤할 수 있거나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어야 하는데, 그게 가족일 가능성이 큰 거죠.

 

저도 하다 보니 그게 정말 큰 것 같아요. 저는 이 사람 눈빛만 봐도 알잖아요. 지금 어떤 상황인지, 건드리면 안 되는지, 찔러도 되는지, 푸시해도 되는지. 저희는 그래도 서로에 대한 경험이 있으니까 그런 걸 가장 많이 신경 쓰는 것 같아요.

 

나중에 팀을 꾸리게 되더라도, 그 팀이 하늘이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고 하늘이가 그들을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잖아요. 제가 그걸 잘 컨트롤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아요. 하늘이가 대외적으로는 항상 웃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고민과 예민한 상황들이 있겠어요. 그런 것들을 중간에서 잘 커트하고, 멘탈 관리를 하는 게 서포터의 가장 큰 역할이지 않을까 싶어요.

 

양광조

기능적으로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지원이 훨씬 더 중요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원래 두 분은 항상 이렇게 사이가 좋나요? 이건 질문지에 없는 건데, 두 분도 혹시 싸우시나요?

 

양희종

싸우기도 하죠. 똑같이 싸워요. 그런데 길 위에서는 거의 싸우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예전에도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저희가 항상 같이 걸어 다녔잖아요. 길 위에서는 정말 안 싸웠어요.

 

오히려 한국에서 지내다 보면 외부적인 요소 때문에 의견 차이가 생기는 것 같아요. 스케줄이 조정이 안 된다든가, 가족 일정이 있다든가 하는 것들이요. 그런 것 말고는 크게 싸우지 않는 것 같아요. 긴 길을 걸으면서 나눈 이야기가 많고, 서로 이해하게 된 것도 많아서요. 그래도 저희도 똑같이 싸웁니다.

 

나는 트레일러너인가, 쓰루하이커인가

양광조

조금 민감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꼭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이에요. 하늘님은 PCT, JMT, 여러 FKT 프로젝트처럼 호흡이 긴 활동을 꾸준히 해오셨잖아요. 최근에는 트레일러닝 쪽 활동도 두드러지고요. 스스로는 어느 쪽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세요? 하이커인가요, 트레일러너인가요?

 

이하늘

그래도 저는 스스로를 쓰루하이커라고 생각해요. 굳이 나누자면 제 정체성은 쓰루하이킹에 있다는 게 기본값인 것 같아요.

 

사실 올해도 원래 여름에 미국에서 하이킹 FKT 프로젝트를 하려고 일정을 잡아놨었어요. 그런데 WSER가 될 줄 몰랐던 거죠. 대회 당첨 발표가 11월, 12월쯤 났는데, 저는 보통 10월부터 내년 계획을 세우거든요. 원래 2026년 여름은 미국에서 FKT를 하는 계획이었어요.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나는 쓰루하이킹을 하는 쓰루하이커인데, 트레일러닝 때문에 다음 프로젝트를 못 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있었죠. 그런데 굳이 경계를 지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어요.

 

결국 쓰루하이킹이든 트레일러닝이든, 저는 자연에서 뛰어노는 게 좋아요. 자연에 있는 게 제일 좋고요. 하이킹을 하든, 트레일러닝을 하든, 산에서 멍을 때리든, 결국 자연에 있는 모습이 좋아서 하는 거예요.

 

트레일러닝도 자연에서 뛰어노는 거고, 자연에 깊고 진하게 몰입하는 일이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자유로워졌어요. 그래서 요즘은 장난처럼 “울트라 쓰루하이커”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그래도 굳이 두 개를 나누자면 제 뿌리는 쓰루하이킹에 있는 것 같아요.

 

양광조

수단이나 방법은 바뀌지만, 본질은 같다는 말로 들리네요.

 

이하늘

맞아요. 조금 더 천천히 가고, 행위가 조금 다른 것뿐이지 결국 같은 게 아닐까 싶어요. 제가 재미있어하는 이유도 결국 그거고요.

 

양광조

울트라 쓰루하이킹을 개척하시는 걸로 하겠습니다.

 

natural sky라는 이름

양광조

닉네임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내추럴 스카이’라는 이름도 자연 속에서의 모습과 관련이 있나요?

 

이하늘

맞아요. 장거리 하이킹이 계속 좋은 이유도 결국 자연 속에 있는 게 제일 재미있기 때문이에요. 거의 10년 차 장거리 하이커로 지내고 있는데, 아직도 그게 가장 재미있는 행위예요. 자연 속에 있는 나의 모습을 좋아하고요. 그래서 아이디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지었던 것 같아요.

계속 더 자연적인 나의 모습을 발견하려고, 저를 자연 속에 더 내놓는 것 같기도 해요.

 

양광조

그런 생각을 명료하게 만든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이하늘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명료하게 느꼈던 건 제가 직장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어요. 희종은 PCT를 걷고 CDT를 걷고 있었고, 저는 휴가를 내서 보러 갔어요. 그때는 장거리 연애 중이었고요.

 

저한테 충격이었던 건 대자연 그 자체보다 거기에 있는 하이커들의 모습이었어요. 요세미티도 가봤고 휘트니도 올라가봤고, 시에라 구간을 보며 “정말 멋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더 크게 다가온 건 사람들의 모습이었어요.

 

“저 사람들은 여기에 대체 뭐가 있길래 저렇게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표정에도 인위적인 게 없고, 가식적인 게 없고, 자연과 어울려 있는 것 같았어요. 특히 외국 하이커 언니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꾸미거나 조신하게 있으려는 게 아니라, 정말 인간 본연의 모습 그대로 있는 느낌이었거든요. 꾀죄죄한데도 너무 자연스러워 보였어요. 그걸 보면서 “나는 왜 저렇게 살지 못하지?”라고 생각했어요.

 

이후에 장거리 하이킹을 하고 자연 속으로 깊게 들어가면서 발견한 제 모습이, 기존에 알고 있던 저와는 다른 본질적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정말 좋았어요. 그래서 더 자연으로 저를 내보내고,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제 아이덴티티 그대로 있는 것에 매료된 것 같아요.

 

양광조

결국 ‘내추럴’은 꾀죄죄함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나온 거군요.

 

이하늘

하하. 그런 것도 있죠.

 

경쟁심보다, 같이 빛나는 일

양광조

두 분이 서로 영향을 많이 주고받으셨을 것 같은데요. 혹시 경쟁심 같은 것도 있나요?

 

양희종

저는 전혀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저는 영화 '스타 이즈 본'을 좋아하는데, 그 영화가 저희 상황과 잘 맞는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물론 결말은 빼고요. 예전에는 제가 조금 더 알려졌던 사람이고, 하늘이가 함께 활동하면서 점점 스포트라이트를 더 많이 받고 있잖아요. 저는 어떻게 보면 정점에서 내려오는 사람이고, 하늘이는 올라가는 사람일 수 있어요. 그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죠.

 

그런데 저는 오래전부터 이렇게 생각했어요. 내가 올라갔으면 내려올 타이밍이 있는 거고, 그걸 확 떨어지는 게 아니라 잘 저공비행하면서 내려와야겠다고요. 그리고 그걸 넘어서 이 사람을 빛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하늘이가 빛나는 게 제가 그림자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같이 빛난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두두부부라는 같은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고, 이하늘과 양희종이라는 사람이 따로 있긴 하지만, 이하늘이 빛나면 양희종도 빛난다고 생각해요.

 

저한테 가장 큰 행복은 이 사람이 행복한 거예요.

 

양광조

경쟁심을 느끼냐고 물어본 질문이 갑자기 너무 무례하게 느껴지네요. 죄송합니다.

 

이하늘

경쟁심을 느낄 수가 없는 게, 각자 갖고 있는 장점이 확실히 달라요. 지금은 제가 퍼포먼스적으로 더 드러나는 활동을 하고 있지만, 희종은 교육하고 전달하는 능력이 저보다 훨씬 좋아요. 좋아하는 바탕은 같지만 방향성이 조금 달라서 경쟁심을 느낀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일이 된 모험을 지키는 방법

양광조

이제 두두부부의 활동이 일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을 것 같아요. 콘텐츠를 만들고, 기록하고, 브랜드와도 함께하고요. 좋아하던 것이 일이 되었을 때, 그 즐거움을 어떻게 유지하고 있나요?

 

이하늘

저는 일부러 혼자 있는 시간을 더 만들어요. 일할 때는 어쩔 수 없이 함께 움직이기도 하지만, 저희가 사실 유튜브를 촬영 목적으로 간다기보다는 “간 김에 촬영하자”는 쪽에 가까워요. 기록을 레퍼런스처럼 남겨두는 거죠.

 

저희끼리는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이라는 말을 써요. 6월부터 8월까지는 프로젝트 겸 여름방학이고, 12월부터 2월 정도는 아웃도어 행사 비수기라 겨울방학처럼 보내요. 그 기간은 온전히 저희 둘만의 시간으로 쓰려고 해요. 새로운 경험도 하고, 너무 일이 되지 않게, 제가 좋아하는 영역으로 계속 남겨두려고 하는 거죠.

 

그리고 평소에도 혼자 운동하는 걸 선호해요. 많은 분들이 같이 운동하냐고 물어보시는데, 같이 할 때도 있지만 저는 혼자 하는 시간이 중요해요.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심지어 너무 좋은 남편도 신경 쓰지 않고, 정말 저 혼자 할 수 있는 시간. 그런 시간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게 이런 거였지” 하고 다시 확인할 수 있어요.

 

양광조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은 보호 장치 같은 거네요. 계속 소진되지 않도록 만드는 에어백 같은 공간.

 

이하늘

맞아요. 호기심을 계속 자극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는 것 같아요. “우리 그때는 어디서 뭐 할까?” 하면서 새로운 곳으로 모험을 떠나고, 루틴한 일에서 벗어나는 거죠. 우리가 본질적으로 자연을 모험하고 탐험하는 사람이라는 걸 계속 깨워놓는 시간이에요.

 

기록하는 이유

양광조

그런 개인적인 기록들이 결국 대중에게 공유되기도 하잖아요. 두 분에게 기록은 어떤 의미인가요?

 

이하늘

저희는 막 노출시키려는 목적보다는 아카이브처럼 쌓아두는 목적이 커요. 물론 FKT 프로젝트 같은 건 더 열심히 기록을 남기지만, 전반적으로는 저희가 나중에 다시 볼 수 있도록 남겨두는 느낌이에요.

 

양희종

기록에는 여러 목적이 있잖아요.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만들 수도 있고, 일기처럼 저장하고 싶어서 만들 수도 있고요. 저희가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가 조금 낯간지럽지만 ‘파이오니어’예요.

 

외국에서는 이미 많이 해봤을지 몰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미개척된 공간들이 많잖아요. FKT 프로젝트도 그렇고, WSER도 그렇고요. 저희가 조금 앞서서 활동하고 있다면, 그 선례를 남겨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하늘이가 FKT를 하는 건 자기 만족도 있지만, 저희는 늘 이야기했어요. 우리나라에 이런 문화가 더 알려지면 누군가는 훨씬 더 좋은 성적을 낼 수도 있고,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고요. 우리가 한 발자국 먼저 내디뎌서 누군가가 정보를 얻고, 다시 도전하고, 그러면 우리나라 하이킹 문화나 트레일 문화가 한 발 더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는 교육도 좋아해요. 제가 겪은 시행착오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제가 뛰어나서 한다기보다 조금 시간이 앞섰던 사람이니까, 뒤에 오는 사람들이 시행착오를 줄이면 좋겠어요. 그런 데서 즐거움을 많이 찾는 것 같아요.

 

양광조

저도 작년 존뮤어트레일을 걸으러 갔을 때 두 분 기록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모기가 많구나. 모기 싫으니까 일단 저 계절에는 가지 말아야지.” 모기를 대신 물려주신 거죠.

웃으면서 뛰는 사람

양광조

이제 WSER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하늘님이 꼭 발견하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 있을까요? 지면을 통해 하는 약속이 될 수도 있고, 부담되면 나중에 지워달라고 하셔도 됩니다.

 

이하늘

당연히 완주를 잘하고 싶어요. 30시간 안에 완주하면 버클을 받고, 24시간 안에 들어오면 실버 버클을 받거든요. 100마일을 24시간 안에 간다는 게 계산해보면 가당치 않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잘하면 좋겠죠.

 

그런데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건, 레이스 내내 웃고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거예요. 제 추구미가 웃으면서 뛰는 사람이거든요. 웃음이 나올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뜻이고, 대회를 정말 즐기고 있다는 뜻이잖아요.

 

양군이 사진도 많이 찍고 영상도 찍어줄 텐데, 그 모습들에서 항상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피니시에만 웃으면서 들어오는 게 아니라, 대회 내내 조금 미친 사람처럼 헬렐레 웃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힘들더라도 몸과 마음 모두 여유 있게 대회를 치르고 오면 좋겠어요. 동시에 정말 “이하늘이라는 사람이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도 확인해보고 싶어요. 지금까지 했던 FKT 프로젝트와는 방향성이 조금 다르거든요. 처음 해보는 것이기도 하고요.

 

대회를 하는 동안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고 웃으면서 달리고, 끝나고 나서 “정말 개운하게 잘했다”라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결과가 더 좋으면 더 좋고요.

 

양광조

감탄중입니다. 인자강. 인간 자체가 강한 사람이에요.

 

양희종

저희는 보통 세 가지 목표를 세워요. 첫 번째는 안전하게 프로젝트나 대회를 마치는 것. 두 번째는 나름의 기록 목표. 이번에는 24시간 안에 들어가면 실버 버클을 받을 수 있으니까 그걸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고요. 세 번째는 그보다 더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는 거예요.

하지만 가장 큰 건 안전이에요. 모든 아웃도어 활동은 집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게 목적이니까요. 잘 완주하고,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집에 돌아오는 게 가장 중요해요.

 

양광조

희종님은 어떤 걸 발견하고 돌아오고 싶으세요? 이건 이제 뺄 수가 없어요. 희종님 파트를 뺄 수가 없어요.

 

양희종

저는 하늘이가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이고, 저는 옆에서 서포트하는 사람이잖아요. 그걸 잘 케어하는 건 당연하고, 저는 그걸 잘 기록으로 남겨놓고 싶어요.

 

우리가 “이거 했어요”라고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잘 아카이빙해놓으면 누군가 나중에 이 대회에 도전할 때 참고할 수 있잖아요. 한국 사람이 WSER에 갔을 때의 정보가 훨씬 더 가깝게 다가올 수 있을 거고요. 궁금한 사람들은 저희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있겠죠. 그래서 저는 그게 목표인 것 같아요. 잘 기록하고, 양질의 자료로 표현해보는 것.

 

양광조

어깨가 무거우시네요.

 

양희종

몸이 무거워서요.

 

다음 꿈의 길들

양광조

마지막 질문입니다. WSER 이후에도 더 ‘빡센’ 대회나, 꿈의 레이스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 있을까요? 레이스가 아니어도 좋고요. 아까 스스로를 울트라 쓰루하이커라고 명명하셨으니까요.

 

이하늘

가장 원하는 건 계속 재미있는 자연을 탐험하는 거예요. 제가 제일 즐거워하는 그 행위를 계속 이어가는 게 우선이에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꿈의 대회들이 몇 개 있긴 해요. WSER도 그중 하나였고요. 대부분 좀 길어요.

 

양광조

이름이 길어요?

 

이하늘

대회가 길어요. 모압 200마일 같은 것들이요.

 

양광조

부산까지 가는구나.

 

이하늘

하드락 100 같은 대회도 나가보고 싶어요. 미국 콜로라도에서 하는 100마일 대회인데, WSER보다도 훨씬 더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대회들도 기회가 된다면 나가보고 싶어요. FKT도 계속 해보고 싶고요. 존뮤어트레일은 제가 3년 동안 도전해서 FKT를 달성했지만, 지금은 기록이 바뀌었거든요. 이제 더 이상 저희 기록이 아니에요. 100마일 트레일러닝을 해보고 나면 다시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어요.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콜로라도도 작년에 아쉬웠던 부분이 있어서 다시 해보고 싶고, 고산을 포함한 FKT로 더 확장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그리고 백두대간이랑 우리나라 동서트레일도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 있는 길을 하면 할수록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큰일이에요. 에너지와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할 건 많고요. 희종이 매번 “좀 짧은 거 하면 안 되겠냐”고 하거든요. 서포트하기 힘들다고요.

 

양희종

보람 있네요. 제가 역량이 돼야 할 텐데요.

 

양광조

괜찮아요. 양군 2가 할 거예요. 양군 3까지 만들어놓으시면 됩니다.

Author

양광조

  • Event Manager / Communications Lead

IntInterviewee

이하늘
  • ULTRA Thru-hiker & Runner

양희종
  • Triple Crown Hiker
Photo kangsai | Fujifilm X-H2 + XF16-8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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