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상과 부상은 험한 곳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익숙한 길, 방심하는 순간에 더 자주 일어납니다.
백패킹, 장거리 트레일, 백컨트리 하이킹, 짧은 당일 산행까지.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어디에서든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사고는 대개 대단한 이유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단순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것들이 겹치며 사고로 이어집니다.
하나하나는 사소합니다. 하지만 체력이 바닥나고 집중력이 떨어진 순간, 이 작은 변수들이 한꺼번에 작동합니다. 그리고 사고가 난 순간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붕대나 부목이 아닙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정확하게 읽어내는 판단입니다.
그런데 이런 순간을 위해 미리 배워 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우리는 코스와 장비는 열심히 공부하지만, 누군가 다쳤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배울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넘어졌든, 발이 꺾였든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픈 부위부터 봅니다. 하지만 순서가 있습니다.
순서를 지키는 것, 이것이 현장에서 사고를 더 키우지 않는 첫 번째 방법입니다.
현장에서는 염좌와 골절을 정확하게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기본 원칙은 하나입니다. 확실하지 않다면 골절로 간주하고 처치합니다.
골절을 염좌로 오판해 걷게 하거나 체중을 싣게 하면 손상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염좌를 골절로 간주해 고정했을 때 잃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아래 신호가 있다면 골절 가능성이 높습니다.
염좌는 인대가 늘어나거나 손상된 상태로, 부기와 통증이 있어도 조심스럽게 체중을 실을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걸을 수 있다는 것이 괜찮다는 뜻은 아닙니다. 판단이 서지 않을 때는 더 안전한 쪽을 선택합니다.
붕대를 감은 뒤에는 발가락의 색, 온도, 감각, 움직임을 반드시 다시 확인합니다. 저리거나 차갑거나 창백해졌다면 너무 조인 것입니다. 부기는 시간이 지나며 더 올라올 수 있어서, 처음에 적당했던 압박이 나중에는 과해질 수 있습니다.
부목의 목적은 하나입니다. 더 다치지 않도록 움직임을 막는 것.
현장에서는 스틱, 배낭, 발포 매트, 나뭇가지가 부목이 되고, 스트랩, 버프, 손수건, 옷이 고정 장비가 됩니다. 발목이나 다리는 발포 매트나 침낭을 감싸 베개처럼 쓰는 방법도 있습니다. 팔과 쇄골은 천으로 팔을 몸에 붙여 고정합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도 분명합니다.
다음 중 하나라도 해당되면 처치와 동시에 구조를 요청합니다.
누구에게, 어떻게 요청할지는 출발 전에 정해 둡니다.
해외 장거리 트레일이나 백컨트리에서는 사정이 다릅니다. 긴급 번호와 구조 체계가 나라마다 다르고,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 구간도 많습니다. 출발 전에 해당 지역의 긴급 연락 방법을 확인하고, 신호가 없는 구간에서는 위성 통신기 같은 별도의 수단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사고를 키우는 것은 상처가 아니라 서두름입니다. 무리하게 이동하다 두 번째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멈춤입니다. 멈추고, 상태를 살피고, 안전한 자리를 정하고, 필요하면 도움을 요청합니다.
가을이 끝나가고 겨울이 시작되는 지금, 산의 위험은 한 번 더 바뀝니다. 낙엽이 눈으로 덮이고, 아침저녁으로 땅이 얼기 시작합니다.
다친 사람은 움직이지 못한 채 앉아 있게 됩니다. 눈 위에서는 이 몇 분이 체온을 빠르게 빼앗습니다.
겨울에는 구조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골절이 저체온증으로 이어질 위험이 커집니다. 골절 처치와 체온 유지는 따로가 아니라 하나의 일입니다.
낙상과 골절은 혼자 오지 않습니다. 출혈, 찰과상, 드물게는 의식 저하까지 함께 올 수 있습니다. 부목만 알아서는 현장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구조 시스템이 촘촘한 곳이든 그렇지 않은 곳이든, 신고하는 순간부터 구조대가 사고 지점에 닿기까지의 시간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백컨트리에서는 그 시간이 몇 시간에서 하루 이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 시간 동안 환자 곁에 있는 사람은 동행자이고, 그 사람 손에 있는 것은 배낭 속 장비가 전부입니다.
배낭 무게를 줄이다 보면 가장 먼저 빼기 쉬운 것이 응급처치 키트입니다. 하지만 무게를 줄이더라도 이것만은 꼭 챙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키트는 필요한 만큼만 가볍게 꾸릴 수 있고, 한 번 쓰이는 순간 가장 무거운 짐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짐이 됩니다.
다행히 새로 살 것이 많지 않습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장비를 응급처치 도구로 바꿔 쓸 줄 아는 것, 그리고 몇 가지를 더하는 것만으로도 낙상과 골절 상황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습니다.
쓸 줄 아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도구가 됩니다.
야생응급처치는 아직 한국에서는 낯선 개념입니다. 도심의 응급처치는 배울 기회가 있지만, 구조가 늦어질 수 있는 환경을 전제로 한 교육은 쉽게 접하기 힘들다고 저는 느낍니다.
백패킹과 장거리 트레일, 백컨트리를 즐기는 분들이 늘어날수록 이 지식은 선택이 아니라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멀리, 더 깊이 들어가는 만큼 돌아오는 방법도 함께 가져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멋있게 타는 법이 아니라, 안전하게 내려오는 법에 대한 기록입니다.
산에서 사고는 한 번에 끝나지 않습니다. 첫 번째 사고 뒤의 서두름이 두 번째 사고를 만듭니다. 그리고 첫 번째 사고는 대개 사소해서 지나친 것들에서 시작됩니다.
머리와 목을 먼저 확인하고, 확실하지 않다면 골절로 간주하고, 멈춰서 판단하고, 필요하면 망설이지 않고 구조를 요청하는 것. 그리고 구조가 오기 전의 시간을 지킬 수 있는 준비와, 그것을 쓸 줄 아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 이 모든 것이 야생응급처치의 일부입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할 일은 분명합니다. 내 배낭에 응급처치 키트가 있는지 열어보고, 눈길에 대비한 미끄럼 방지 장비를 점검하고, 비상 연락처를 저장해 두고, 동행자와 부상이 났을 때의 순서를 한 번 이야기해 보는 것.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가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을 때만, 그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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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새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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